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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국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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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기수는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에서 국악을 공부하고 아악수로 활동한 국악인이다. 1941년 창작 국악곡 〈세우영〉을 작곡하고, 광복 후 대한민국 국악계의 토대를 다져 창작국악과 국악작곡의 개척자로 불린다.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사, 장악과장, 악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과 제39호 〈처용무〉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국립국악원 원장과 국립국악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국악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국악곡 작곡으로 인해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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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국악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기수
본명김기수
출생1917년 11월 22일
출생지일제강점기 경성부
사망1986년 10월 21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장르한국 전통음악
활동 시기1938년 ~ 1986년
직업
직업작곡가, 교육인

2. 생애

경성부 출생이다. 일제강점기조선 왕실 관리를 위해 설치된 이왕직 아악부의 아악부원양성소에서 국악을 공부하였고,[1] 이왕직아악부에서 아악수와 아악사를 맡았다.[3] 1941년 획기적인 창작 국악곡으로 꼽히는 〈세우영(細雨影)〉을 작곡했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국악계의 토대를 닦았다. 흔히 창작국악과 국악작곡의 개척자로 불린다.[2]

1951년부터는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사, 장악과장, 악사장으로 일했다.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3] 1973년 국립국악원 원장에 임명되었고 국립국악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국악에 대한 저서를 다수 저술하여 국악계의 대부격으로 활동했다. 국립국악원에 그의 호를 딴 '죽헌실'이라는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도 지냈다.

3. 평가

독주곡, 관현악곡, 무용음악, 의식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전통 음악 악보를 채보하였다. 또한, 다수의 교재와 국악 입문서를 발간하여 국악 교육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이와 더불어 악기를 개량하고 복원하는 등 한국 전통 악기의 개량 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3]

3. 1. 친일 행적 논란

성악곡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 등 친일 성향의 국악곡을 작곡한 사실이 드러나,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음악인 부문에 이름이 올랐다. 특히 《황화만년지곡》은 일본 건국 260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 천황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는 이능화가 쓴 시에 김기수가 곡을 붙인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기수가 남긴 친일 관련 자료의 수는 많지 않지만, 그 행위의 성격이 매우 노골적이라고 평가했다.[4]

참조

[1] 문서 이왕직아악부는 광복 후 설립된 국립국악원의 전신이다.
[2] 뉴스 창작국악은 발전하고 있는가 컬처뉴스 2006-11-22
[3] 백과사전 김기수 글로벌 세계 대백과
[4] 뉴스 황국신민 맹세한 인물이 한국음악의 거목 [친일음악편] 홍난파, 현제명, 김성태, 남인수 등 24명 컬처뉴스 200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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